적당히 포근하고 살랑거리는 바람 덕에 언제든지 환기하기 좋은 계절이 지나고 있다. 열을 잔뜩 받은 무쇠 팬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어도 덥지 않고, 고요하게 잔잔히 퍼진 연기는 창만 열면 금방 사라지는 좋은 날씨. 여름이 오고 있다는 기운이 느껴지니 지나가는 봄이 아쉽기만 하다.

지금은 김 굽기 좋은 계절이다.  

어느 날 갑자기 도시락 김의 작고 얇은 플라스틱 받침이 몹시도 거슬리기 시작했다.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는 도시락 김만으로 밥을 먹기도 했고, 회사 생활을 하며 도시락을 싸다닐 때도 도시락 김은 기본 옵션 같은 반찬이었다. 아주 가끔은 손에 들기름과 김가루를 묻혀가며 도시락 김을 간식과 술안주로 즐기기도 했다. 나에게 도시락 김은 최애는 아니지만 반찬 고민이 생겼을 때 '그래도 김이 있어!'라고 빈곤한 내 도시락 가방을 채워주는 든든한 존재였다. 그래서 도시락 김이 떨어지지 않도록 찬장을 미리 채워놓는 습관 아닌 습관이 있었다.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 겸 카페를 준비하고 있어 그랬던 것인지 어느 날 재활용 분류함에 겹겹이 쌓인 도시락 김의 플라스틱 통 받침을 보며 문득 '김을 구워야겠다' 고 생각했다. 다행히 엄마 덕에 들기름 발라 소금을 솔솔 뿌린 구운 김의 맛을 알고 있어 대단한 결심은 필요하지 않았다.  

엄마 꾸러미에는 가끔 들기름병이 들어있었지만 참기름만큼 빠르게 소진되지 않았다. 아주 가끔은 나물을 묻힐 때 넣기도 하고 찬물에 헹군 소면에 들기름과 쯔유를 넣고 비벼먹기도 했지만 참기름을 3, 4병 먹어치우는 동안 들기름은 한 병을 먹지 못했다. 그랬던 들기름은 내가 김을 굽기 시작하면서 속절없이 사라져 갔다.    

아주 가끔은 들기름을 바르지 않은 김을 구워 먹으며 나도 어른 입맛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초록빛의 바삭한 김을 가지런히 쌓아 가위로 잘라준다. 손으로 전달되는 바삭하고 톡톡한 질감 때문에 가끔은 밥솥에서 밥 한 숟갈을 떠 김에 싸서 바로 맛을 본다.


전체글 읽기

상호 : 아토모스 | 대표자 : 선기영 | 사업자번호 : 150-67-00502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8길 11, 1층 101호 |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 제 2020-서울성북-2073 호 | 고객지원 : 이메일 또는 Contact

Host by Imweb

상호 : 아토모스 | 대표자 : 선기영 | 사업자번호 : 150-67-00502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8길 11, 1층 101호 |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 제 2020-서울성북-2073 호 | 고객지원 : 이메일 또는 CONTACT 

Host by Imw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