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다양성은 일상 곳곳에

2019년 가을 무렵 꽤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뒀다. 나에게 일이란 애증이라 일을 멈추기까지 마음이 꽤나 복잡다단했다. 퇴사를 하고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로 불안하게 요동치는 마음속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조금 멀리 여행을 다녀오는 것뿐이었다. 여행을 계획하던 초기에는 몸과 마음이 장아찌처럼 절어있어 깨끗한 공기, 아름다운 자연 풍광으로 힐링하고 싶다는 욕구가 매우 컸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 난 후 아이슬란드 여행을 꼭 가고 싶었지만 다녀오고 나면 통장 잔고의 절반은 사라질 것 같아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돌리미티에 가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돌로미티도 경비 부담이 적지 않았고 커피 일을 하는 김경준(남편)을 고려해 다양한 커피 트렌드를 볼 수 있는 미국 포틀랜드로 방향을 틀었다. 물론 커피의 성지는 이탈리아지만 꽤 오래전 파운드로 환전할 것을 달러로 환전한 어이없는 실수가 있어 여행지는 미국으로 변경되었다.
엉뚱하게도 우리는 후보지에 없던 뉴욕과 보스턴으로 여행(2019. 11. 27 ~ 12. 7)을 다녀왔다. 여행은 비행기 티켓 예매와 숙박시설 예약으로 시작되는데 뉴욕은 시작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경비 부담으로 포기했던 아이슬란드, 돌리미티와 뉴욕 여행 경비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아토모스를 오픈했던 2021년. 카페 겸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를 운영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는 방문객들이 꽤 많았다. 10년 넘게 바리스타로 살아온 김경준 덕분에 언젠가 카페를 운영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토모스가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된 가장 큰 레퍼런스는 뉴욕 여행에서 만난 다양한 매장 덕분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영감을 받은 매장들은 '제로 웨이스트' 나 '리필스테이션' '플라스틱 프리' 등과 같은 문구를 드러나게 표기하지 않은 곳들이다. 여행 당시 제로 웨이스트, 리필스테이션이라는 용어도 몰랐고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를 본 적도 없는 상태였다. 뉴욕에도 다양한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가 있겠지만 우리의 이동 동선에 우연히라도 볼 수 있는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가 있지 않았다.